마윈 타오바오 회장 강의

얼마전 한국에서 행한 강의입니다   비교적 쉬운 영어로 알아 듣기가 쉽습니다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처럼 생긴분이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지  한번 들어보시지요

 

 (로딩이 길어도 충분히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고객과 소통하라… 그것이 성공 열쇠다"
"10년전 우리가 없었듯 우릴 뛰어넘는 기업
충분히 나올 수 있어"

‘중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잭 마(45)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11일 중국 항저우 본사에서 열린 창업 10주년 기념행사 중 하나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항저우=김희섭 기자 fireman@chosun.com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목표를 추구한 것이 지난 10년간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중국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잭 마(중국명 馬云·45)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지난 11일 본사가 있는 항저우에서 창업 10주년 행사 후 1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마른 체격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그는 흰색 셔츠와 면바지 차림으로 회견장에 나왔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섞어가며 여유 있게 답했다.

그는 성공 비결로 고객을 감동시키는 친절 서비스를 꼽았다. "고객이 전화를 걸면 자동응답기로 한참 동안 뺑뺑이를 돌리는 회사는 기본적으로 서비스 마인드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과 회사의 소통, 고객끼리의 원활한 대화를 강조했다. 회사에 전화나 메신저, 이메일 등으로 문의하면 무협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별칭으로 가진 상담원들이 신속하게 응대하고, 구매자와 판매자끼리 직접 메신저를 통해 추가정보를 주고받게 했다는 설명이다.

잭 마 회장은 '역발상의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하반기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자 대다수 기업이 감원과 비용절감에 나선 것과 반대로 그는 직원을 늘리고 3000만달러(약 370억원)를 들여 전자상거래의 장점을 홍보하는 광고마케팅을 펼쳤다.

그 결과 글로벌 회원 수가 10% 넘게 늘었다. 그는 "오늘이 어려우면 내일은 더 어려울 수도 있다"면서 "그래도 끝까지 인내하고 버티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중국에는 알리바바닷컴을 통해 처음으로 해외수출에 성공했다는 기업이 상당히 많아요. 우수한 제품을 갖고도 판로 개척에 고민하는 한국 기업들도 우리를 활용하면 중국이나 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열릴 것입니다."

알리바바닷컴은 한국무역협회와 제휴해 이달 15일 중국어판 사이트에 한국 상품 판매코너를 신설하고 1000여개 한국 중소기업 제품을 전시판매한다. 현재 알리바바닷컴에 가입한 국내 중소기업은 9만여개로, 1년 전보다 64% 증가했다.

"망원경으로 세상을 샅샅이 살펴봐도 현재 우리의 경쟁자가 없어요. 10년 전에 알리바바닷컴이 없었던 것처럼 향후 10년 내에 우리를 능가하는 기업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고향인 항저우의 지방대학 영어강사 출신인 잭 마는 1999년 "인터넷이 세상을 확 바꿀 것"이라고 확신하고 17명의 동료들과 함께 알리바바닷컴(alibaba.com)이라는 기업간(B2B)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세웠다.

직접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온라인 장터만 열어주고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거래를 중개하는 사업모델이다. 알리바바닷컴은 올 상반기에 매출 17억위안(약 3000억원)에 5억1400만위안(약 92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잭 마 회장은 2003년 미국의 이베이 같은 일반인 대상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닷컴(taobao.com)을 세웠고 2005년 야후차이나를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알리바바 분기 실적이 의미하는 것은?

 

Slack for iOS Upload (1)

by 정주용 경영투자칼럼니스트

지난 10월 27일 알리바바는 분기실적을 발표했다. 분기 매출 성장률 전년대비 36%, 연간구매자수 3.8억명, 잉여현금흐름 2.3조원.

지난 2014년 상장 당시 의문시됐던 모바일로 전환도 완전히 달성했다. 모바일 매출비중이 60%돌파한 것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완연히 꺾인 상황에서 매우 고무적인 실적이다. 경제 전체적인 성장률 하강 속에서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은 인터넷산업이 중국의 새로운 경제를 든든히 받친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금번 발표는 월가 투자은행의 추정보다 훨씬 훌륭한 결과로 주가도 지난 한달동안 무섭게 올랐다. 지난달말 역사적 저점인 50달러 중반에서 바닥을 찍고 올라서 어제 종가는 82.3달러였다. 한달만에 50% 주가 상승을 기록했다.

실적에 대한 소식 때문이던 과도한 우려감이 해소되었든 알리바바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은 서서히 회복되는 과정에 있다.

여전히 상장직후 미친기대감이 반영되었던 120달러 수준은 멀어보이지만 시가총액 2000억 달러(220조 원)의 상징적 지위는 다시 복귀했다.

알리바바가 on-track으로 복귀한 것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해볼 수 있다.

Slack for iOS Upload

인터넷플러스 정책의 큰 시각에서 바라볼 때 이건 알리바바와 마윈 회장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 시스템의 변화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다.

중국 인터넷 사용자의 패턴이 PC에서 모바일로 급속히 진행중이란 사실과 모바일인터넷 확산이 실제 손에 잡히는 부가가치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시진핑 정권이 주창하는 ‘인터넷플러스’ 정책이 유효하게 작동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제 알리바바 뿐 아니라 텐센트, 바이두, 르티비, 넷이즈, 화웨이, 샤오미의 성장과 실적을 하나의 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들 기업을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차이나 2.0 주식회사란 거대한 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중국정부란 지주회사 밑에서 각자 역할을 담당한다고 보면 맞다. 비록 주주는 일본, 미국, 남아공 다양하지만 결국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 없이는 생존 불가한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분 고분 정권에 순응하는 기업들이기도 하다.

모바일시대를 리딩하려는 차이나 2.0 주식회사는 1.0의 문을 닫고 간판을 바꿔달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새로운 엔진에 스파크를 일으키며 전진하고 있다.

새로운 엔진의 추력과 가속력이 1.0시대의 무거운 짐들을 모두 안고 나아가기 충분하다면 1.0의 잔재인 국영기업의 비효율, 막대한 부채도 극복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알리바바의 기대 이상의 실적은 한 기업의 주가 상승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시그널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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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I ruled the world (By Michael Sandel) 내가 세계를 통치한다면 (마이클 샌델)

If I ruled the world (By Michael Sandel)

내가 세계를 통치한다면 (마이클 샌델)

 

 

 

 

 

If I ruled the world, I would rewrite the economics textbooks. This may seem a small ambition, unworthy of my

sovereign office. But it would actually be a big step toward a better civic life. Today, we often confuse market

reasoning for moral reasoning. We fall into thinking that economic efficiencygetting goods to those with

the greatest willingness and ability to pay for themdefines the common good. But this is a mistake.

 

 

내가 세계를 통치한다면, 나는 경제학 교과서들을 다시 쓸 것이다. 이것은 최고위 공직에는 걸맞지 않은, 시시한 야심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는 더 나은 시민생활을 향한 큼지막한 한 걸음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종종 시장 논리를 도덕 논리와 혼동한다. 우리는 경제적 효율 - 재화들을 그것들을 구매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들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큰 이들에게 가게 하기 - 이 공동/통선을 정의해준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Consider the case for a free market in human organskidneys, for example. Textbook economic reasoning

makes such proposals hard to resist. If a buyer and a seller can agree on a price for a kidney, the deal presumably

makes both parties better off. The buyer gets a life-sustaining organ, and the seller gets enough money to make

the sacrifice worthwhile. The deal is economically efficient in the sense that the kidney goes to the person who

values it most highly.

 

 

인간 장기 - 예를 들어 신장(腎臟)이 자유롭게 거래되는 시장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제의를 살펴보자. 경제학 교과서의 논리는 그런 류의 제의들을 거부하기 어렵게 한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신장 가격에 동의할 수 있다면, 그 거래는 추정상 쌍방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구매자는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장기를 얻고 판매자는 그 희생을 가치 있는 것이 되게 할 만한 액수의 돈을 얻는다. 그 거래는 그 신장이 그것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 간다는 의미에서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But this logic is flawed, for two reasons. First, what looks like a free exchange might not be truly voluntary. In

practice, the sellers of kidneys would likely consist of impoverished people desperate for money to feed their

families or educate their children. Their choice to sell would not really be free, but coerced, in effect, by their

desperate condition.

 

 

그러나 이 논리는 두 가지 이유들로 결함 있다. 첫째, 자유로운 교환처럼 보이는 것이 참으로 자발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신장 판매자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거나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구하는 가난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들의 판매 선택은 정말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들의 절망적 처지에 의해 강제된 것일 것이다.

 

 

So before we can say whether any particular market exchange is desirable, we have to decide what counts as

a free choice rather than a coerced one. And this is a normative question, a matter of political philosophy.

 

 

그러니 어떤 것이든 한 특정 시장 교환이 바람직한 것인지 여부를 말할 수 있기 전에 우리는 강제된 선택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선택으로 간주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규범적 문제, 정치철학적 문제이다.

 

 

The second limitation to market reasoning is about how to value the good things in life. A deal is economically

efficient if both parties consider themselves better off as a result. But this overlooks the possibility that one (or

both) of the parties may value the things they exchange in the wrong way. For example, one might object to the

buying and selling of kidneys even absent crushing povertyon the grounds that we should not treat our

bodies as instruments of profit, or as collections of spare parts. Similar arguments arise in debates about the

moral status of prostitution. Some say that selling sex is degrading, even in cases where the choice to do so is

not clouded by coercion.

 

 

시장 논리의 두 번째 한계는 생활에서 좋은 것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하나의 거래는 쌍방이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이 이득을 보는 것으로 생각할 때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이나 쌍방이 그들이 교환하는 사물을 잘못 평가할 가능성을 간과한다. 예를 들어, 혹자는 - 극심한 가난에 의해 강제되지 않을 때도 - 신체를 수익의 도구로, 또는 예비 부속품의 일단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에서 신장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것에 반대할 수 있다. 유사한 논변이 매춘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논쟁에서도 등장한다. 몇몇 이들은 섹스를 파는 것은 그렇게 한다는 선택이 강제에 의해 오염된 것이 아닌 경우에도 인간적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I’m not saying that, if I ruled the world, I would ban these practices. I have a bigger goal in mind: to loosen the

hold that economic reasoning exerts on the public mind, and on our moral and political imagination.

 

 

나는 내가 세계를 통치한다면 이 관행들을 금지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나는 더 큰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다: 경제적 논리가 공공의 심성에,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 및 정치적 상상력에 행사하는 장악력을 느슨하게 하기.

 

 

Not only in textbooks, but also in everyday life, economics presents itself as a value-neutral science of human

behaviour. Increasingly, we accept this way of thinking and apply it to all manner of public policies and social

relations. But the economistic view of the world is corrosive of democratic life. It makes for an impoverished public

discourse, and a managerial, technocratic politics.

 

 

교과서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경제학은 인간 행동에 대한 가치중립적 과학으로 행세한다. 점점 더, 우리는 이 사고방식을 승인하고 그것을 모든 종류의 공공정책들과 사회관계들에 적용한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그 경제학적 견해는 민주주의 생활을 좀먹는다. 그것은 빈약한 공공 담론, 그리고 경영자적이고 기술 관료적인 정치를 조장한다.

 

 

So here is how I would revise the textbooks: I would abandon the claim that economics is a free-standing,

value-neutral science, and would reconnect it with its origins in moral and political philosophy. The classical

political economists of the 18th and 19th centuriesfrom Adam Smith to Karl Marx to John Stuart Millrightly

conceived economics as a subfield of moral and political philosophy. In the 20th century, economics departed

from this tradition, defined itself as an autonomous discipline, and aspired to the rigour of the natural sciences.

 

 

그런 이유로 나는 그 교과서들을 다음과 같이 개정할 것이다: 나는 경제학이 자립적인, 가치중립적인 과학이라는 주장을 폐기하고 그것을 도덕 및 정치 철학에 있는 그것의 기원과 재연결시킬 것이다. 아담 스미스에서 칼 마르크스를 거쳐 존 스튜어트 밀에 이르기까지 18세기와 19세기의 고전 정치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올바르게 도덕 및 정치철학의 한 하위분야로 이해했다. 20세기에 경제학은 이 전통과 결별해 그 자신을 하나의 자율적 분과로 정의했으며 자연과학의 엄밀함을 열망했다.

 

 

The notion that economics offers a value-neutral science of human behaviour is implausible but increasingly

influential. Consider the growing use of cash incentives to solve social problems. The NHS is experimenting with

what some have called “health bribes”cash rewards to people for losing weight, quitting smoking, or taking their

prescribed medications. In the United States, some school districts have tried to improve academic achievement

among disadvantaged students by offering them cash rewards for good grades, high test scores, or reading books.

A charity that operates in the US and the UK offers drug-addicted women 200 to be sterilised, or to accept

long-term birth control devices.

 

 

경제학이 인간 행동에 대한 가치중립적 과학을 제공한다는 통념은 그럴듯하지 않지만 점점 더 영향을 끼쳐왔다.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현금 인센티브의 점증해온 이용을 살펴보자. NHS는 몇몇 이들이 건강 뇌물이라고 부르는 것 - 살을 빼고 담배를 끊고 처방된 대로 약을 먹는 사람들에게 현금으로 보상해주기 - 을 실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일부 학군들이 좋은 성적, 높은 시험 점수, 독서에 대해 현금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개선하려고 시도해왔다.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 자선단체는 마약중독 여성들에게 불임수술을 하거나 장기 피임기구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200 파운드를 제공한다.

 

* NHS - 영국의 국민건강관리국(National Health Service)

 

 

As ruler of the world, I would not necessarily abolish these schemes. But I would insist that we ask, in each case,

whether the cash incentive might degrade the goods at stake, or drive out non-market attitudes worth caring about.

For example, if we pay kids to read books, do we simply add an additional incentive to whatever motivations may

already exist? Or, do we teach them that reading is a chore, and so run the risk of corrupting or crowding out the

intrinsic love of learning?

 

 

세계의 통치자로서, 나는 이 방안들을 무조건 폐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매 경우마다 현금 인센티브가 위태로운 지경에 있는 재화들[선들]을 열화시키고 있지는 않은 지, 또는 돌보아야 할 만한 비시장적 태도들을 추방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해야 함을 강조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독서를 하는 아이들에게 현금 보상을 한다면,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체의 동기들에 단순히 인센티브를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독서는 지루한 것이라고 가르쳐서 배움에 대한 내재적 애호를 밀쳐 내거나 오염시키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인가?

 

 

If market values sometimes crowd out attitudes and values worth caring about (such as the love of learning for its

own sake), then market reasoning must answer to moral reasoning. Standard economic models assume that markets

are inert, that they do not touch or taint the goods they exchange. But if buying and selling certain goods changes

their meaning, then the case for markets cannot rest on efficiency considerations alone. It must also rest on a moral

argument about how to value the goods in question.

 

 

시장 가치들이 (배움 그 자체를 위한 배움에 대한 애호 같은) 때때로 돌보아야 할 만한 태도들과 가치들을 밀쳐 낸다면, 시장 논리는 도덕 논리에 답변해야 한다. 표준 경제학 모델들은 시장들이 비활성체라고, 그것들이 교환되는 재화들을 손상하거나 오염시키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어떤 재화들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것이 그것들의 의미를 변화시킨다면, 시장을 위한 논거는 효율성을 고려하는 것에만 근거할 수는 없다. 그것은 또한 문제의 재화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관한 도덕적 논변에도 근거해야 한다.

 

 

While revising the economics textbooks, I would issue one modest decree: I’d ban the use of an ungainly new

verb that has become popular these days in the jargon of politicians, bankers, corporate executives, and policy

analysts: “incentivise.” Banning this verb might help us recover older, less economistic ways of seeking the public

gooddeliberating, reasoning, persuading.

 

 

경제학 교과서를 개정하는 한편, 나는 온건한 법령 하나를 공포할 것이다: 나는 정치학자들, 은행가들, 기업 중역들, 그리고 정책 분석가들의 용어들 중 하나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흉물스러운 새 동사 하나 - “인센티바이즈” - 의 사용을 금지할 것이다. 이 동사를 금지하는 것은 우리가 공공선을 추구하는 예전의, 덜 경제학적인 방식들 - 심의, 논증, 설득 - 을 회복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 출처: 퍼스펙티브 매거진 / 2012919

http://www.prospectmagazine.co.uk/magazine/if-i-ruled-the-world-michael-sandel/

 

 

* 번역: 정성철 citta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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